성북문화재단 이건왕 대표이사가 지난 7일 성북문화재단 ‘꿈빛극장’에서 재단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 대표이사는 지역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성북문화재단을 맡으면서 거버넌스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성북구가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8개 대학과 많은 대서관저, 왕릉 포함문화다양성 조화 위한 거버넌스 형성대표이사, 화려한 경력 가지고 있지만“배우려는 자세”로 거버넌스 더욱 발전“재단의 거의 모든 사업 거버넌스 운영”지역주민과 소통 속 ‘도서관 계획 변경’참여 폭 넓은 덕에 주민 주인의식 높아재단 후원도 꾸준히…300명 정기후원‘삶과 문화 순환도시 성북’ 비전 세우고거버넌스 발전 위해서 ‘문화도시’ 도전 성북의 문화다양성은 폭이 넓다. 세계문화유산인 의릉과 정릉이 우리 고유의 역사를 담고 있는가 하면, 밀집한 대사관저 등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문화가 드나들고 있다. 자치구 내 여덟 개 대학에는 해마다 전국에서 온 청년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지역 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주민과 다른 색채를 지닌 이주민이 대거 유입되는 중이기도 하다.이런 다채로운 목소리를 조화하려는 요구가 일찍부터 제기돼서일까. 성북은 남다른 거버넌스로 다른 문화예술계나 자치단체 등의 주목을 받았다. 2019년 12월 열린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국제문화상 수상기념 지역문화협치 콘퍼런스 모습. 성북의 지역 문화예술 거버넌스는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성북문화재단 이건왕 대표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는 1986년 미리내예술극장에서 공연사업기획을 담당하며 공연예술계에 첫발을 디뎠다. 초창기에는 극장 스태프, 공연기획자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이후 세종문화회관, 서울문화재단을 거치며 하이서울페스티벌과 같은 대규모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공연본부장을 맡으면서는 극장 가동률을 60%에서 90%까지 높였다고 한다. 이후 2015년 종로문화재단에서 처음 대표직을 맡았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에 두 번째로 대표이사를 맡은 이 대표를 만나기 전에는, 그가 강한 비전이나 운영 철학을 자신감 있게 강조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욱이 그에게 성북은 30년을 산 고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계속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배우는 자세로 살아왔다”며 “성북으로 돌아올 적에도 성북의 거버넌스가 얼마나, 어떻게 잘 조직되고 운영됐는지 살피려는 기대에 찬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성북문화재단을 맡으면서 “과연 예상대로 협치가 잘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고 한다. 민관협치 지역문화예술 거버넌스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공유성북원탁회의’가 대표적이다. 이는 지역문화예술인과 지역주민, 재단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이며 거버넌스다. 특정 사업이나 정책만을 위해 일회성으로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공간·활동·사업 등을 상시적으로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완성된 대표 사업을 묻자 이 대표는 난감해하면서 “재단의 거의 모든 사업이 그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에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욱이 성북문화재단의 거버넌스는 계속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파릇파릇한 새싹 거버넌스로는 ‘월곡꿈그림도서관’의 청소년 운영위원회를 들 수 있다. 이 도서관은 처음에는 성북구에서 어린이 도서관으로 계획했으나 지역주민과의 소통으로 ‘청소년특화도서관’으로 변경됐다. ‘독한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운영위원회는 직접 후배를 모집·교육하고, 자체적으로 총회도 연다. 북큐레이션부터 콘서트, 청소년 축제 기획까지 하면서 운영에 적극 참여해오고 있다. 그 덕분인지 “개관 이래 한 번도 컴플레인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8월10일 월곡꿈그림도서관에서 진행된 슬구 작가와의 만남 현장. 큰 규모의 협의체로는 관내 일곱 대학(고려대·국민대·동덕여대·서경대·성신여대·한성대·한예종)과의 업무협약이 있다. 학교 간 모임을 통해 공통 교과를 개설해 공통으로 인정하는 단계까지 논의가 진행됐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연구자들이 이미 연구 중인 ‘지역학으로서 성북학’을 협력하여 탐구하는 데까지 목표를 두고 있다. 이보다 앞서 2020년에는 ‘성북구지역대학협력사업’의 일환으로 한성대디자인아트교육원에서 ‘문화공간 이육사’ 앞 유휴 녹지를 예술공원으로 조성하기도 했다. 거버넌스가 이렇게 특징적으로 구축된 배경에는 문화 인프라 부족도 자리잡고 있었다. 공연장·아트센터 등 공간 관리 중심으로 운영되는 다른 문화재단과 달리 10년 전만 해도 성북에는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었다. 이 점이 오히려 시민 참여와 필요를 불러일으켜서, 거버넌스가 성북 특유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거버넌스는 또 성북만의 독특한 공간 형성에도 영향을 줬다. 우범지역이던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에는 마을장터인 ‘고개장’과 어린이·지역민의 삶터이자 쉼터, 놀이터인 ‘미인도’라는 창조적 공간이 완성됐다. ‘천장산우화극장’은 지역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든 성북정보도서관 속 블랙박스극장이다. 공연장 내부 벽을 까맣게 칠한 육면체 공간으로 구성돼 무대와 객석을 공연 특성에 따라 가변적으로 배치하는 이 극장은 공연·전시·행사·워크숍 등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이 공간들은 성북문화재단과 ‘협동조합 고개엔마을(아름다운미아리고개 친구들)’, ‘월장석(월곡동, 장위동, 석관동) 친구들’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참여 폭이 넓어서인지 성북 주민의 ‘지역 사랑’과 ‘주인의식’은 대단하다. 기초문화재단에선 드물게 재단 후원 사업인 ‘나눔풍성’이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다. 시민·소상공인·기관관계자·문화예술인 등 300명이 정기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 특정 사업의 지정 후원도 가능하여, 후원자가 참여자·수혜자로 순환된다. 가령 성북 4대 축제 중 하나인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 부스 참가자가 수익금 일부를 ‘누리마실 친구들’로 후원하면 다음해 축제에서 사용된다. 올해 14회째를 맞이한 성북 4대 축제 중 하나인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의 지난 25일 현장 모습. 올해 14회째를 맞은 ‘누리마실’은 음식을 매개로 문화·인종·언어·세대가 어울린 행사이다. 대사관저 요리사까지 직접 참여해 제대로 된 현지 문화를 맛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지난 25일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일회용품 없는 축제로 진행됐다. ‘친환경’ 같은 새로운 가치를 포함해 문화다양성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참여자의 열정에 발맞추어 재단 직원도 최대한 주민의 필요를 채우려 노력한다. 이 대표는 “직원들을 보면 소명의식에 피곤한 줄도 모르는 듯한 모습이어서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대학생이 많은 성북구인 만큼 구와 협력해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도 역점을 뒀다. 보다 가볍게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팝업스토어 ‘공업사’를 길음청년창업거리에 열었다. 본격적으로 창업하기 전 한 달간 자신만의 독특한 창업 아이템을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부담을 줄이고 창업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중 성공적인 팀은 창업도 지원한다. 출범 10주년을 맞은 재단은 지난해 중장기 발전용역을 추진하며 미래 10년을 단단히 준비했다. 특히 재단의 향후 10년은 ‘문화도시’와 관련이 깊다. 이미 다른 지역의 모델이 될 만큼 거버넌스가 뛰어났지만, 이를 좀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문화도시’에 도전했다. 지난해 12월 문화예비도시에 선정된 데 이어 문화도시로 선정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성북구는 ‘삶과 문화의 순환도시 성북’으로 비전을 세웠고 ‘기존 거버넌스가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며 확장’함을 목표로 ‘공존, 공유, 순환’하는 지역문화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재단 직원의 승진을 축하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 자리는 축제처럼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것은 마치 재단의 역동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유진아 객원기자 jina6382@naver.com사진 성북문화재단 제공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기사 본문 보기]